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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19일 [06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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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개요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東軒), 객사(客舍),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조선태조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후 인조4년 (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33세때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지역성과는 달리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 길이가 1천4백10m로 동내,남내,서내등 4만1천평에달하는 3개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안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문을 비롯 서,남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용인,제주민속마을 같이 전시용이나 안동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서쪽22㎞거리의 읍성민속마을은 6만8천여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토방, 지붕,섬돌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의 절구통마저도 옛 스럽다.

낙안읍성 연혁

마한의 옛터로서 백제때 파지성,분차,분사라고 부름
-신라 경덕왕 16년(757)분령군으로 고쳐부름
-고려 태조 23년(940) 낙안군(양악)으로 개칭
-고려헌종 9년(1018)에는 나주부로 소속
-고려 명종 2년(1172)감무를 두었다가 지군으로 승격
-조선 태조 6년(1397)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토벌함
- 조선 세조 12년(1466)군수로, 중종 10년(1515)현령으로, 명종 10년(1555)현감을 둠
-선조 8년(1575)에 다시 낙안군으로 승격
-조선 인조4~6년(1626~1628)임경업군수가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함
-1910년에 낙안군을 폐지 7개면이 순천군으로 편입됨 (순천군 낙안면이 됨)
-1949년에 순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승주군 낙안면이 됨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로 지정
-1984년부터 민속마을 정비복원사업 추진
-1995년 1월1일 순천시 승주군 통합으로 순천시 낙안면이 됨

접근코스 및 소요시간
낙안면 소재지→낙안읍성(3분)

교통편

순천역

낙안(63번, 68번) 시내버스
순천역 벌교읍→낙안 군내버스 벌 교→낙안읍성
택시10분(5,000원)
순천역 낙안읍성 택시20분(20,000원)

주요 편익시설

식당 : 낙안읍성내 및 민속관광농원식당
주변관광지 : 선암사, 상사호, 금둔사, 금전산 ,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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